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지외의 테레사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>'''[[현대]]의 가장 위대한 [[성인(기독교)|성인]].''' >---- >― [[교황]] [[비오 10세]][[http://www.thelittleflower.org/MODERN TIME.htm|#]] >이 책[* 소화 데레사 자서전]을 다 읽고 난 후 "만일 이 책이 가톨릭 정신을 대표한다면 내가 가톨릭 신자가 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."고 생각할 만큼 깊은 인상을 받았다. 왜냐하면 그 책에서 나는 겸손과 대담함, 자유와 기율, 기쁨과 슬픔, 의무와 인애(仁愛), 강한 힘과 유연함, 은총과 자연, 어리석음과 지혜, 부유함과 빈곤, 공동성과 개성 같은 한 쌍을 이루는 대립 사이에 살아 숨쉬는 종합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. 그녀의 성덕(聖德)은 [[부처|불타]]의 심성(心性)과 [[공자]]의 덕성(德性), 그리고 [[노자]]의 철학적 초연성(超然性)을 한데 합친 것과 같아 보였다. 24세를 일기로 죽은 젊은 수녀가 이러한 완덕에 도달했다니! 그 비결이 무엇일까? 그녀가 만일 그리스도 신비체(神秘體)의 불가결한 지체가 아니었던들 자기 개성을 어떻게 이렇게 충분히 실현할 수 있었으랴! >---- >-[[https://maria.catholic.or.kr/dictionary/term/term_view.asp?ctxtIdNum=2534&keyword=&gubun=01|우징숑(吳經熊)]].[* 1899∼1986. [[중화민국]]의 법학자. 중화민국 헌법 및 유엔 헌장의 기초에 참여했다. 1917년에 세례를 받고 감리교 신자가 되었으며, 1937년에 소화 데레사의 자서전에서 큰 영향을 받아 가톨릭으로 개종했다.] 《동서의 피안》.[* 원제: 《Beyond East and West》. 런던 1952] 309-310쪽. 김익진 옮김. 19세기 말에 활동했던 [[프랑스]]의 [[가톨릭]] 여성 [[수도자]](수녀), [[성인(기독교)|성인]]. [[한국천주교회]]의 대다수 신자들에게는 '소화(小花) 데레사', '아기 예수의 데레사'라는 호칭으로 잘 알려졌다. 파리의 성 디오니시오, 투르의 성 마르티노, 성왕 [[루이 9세]], 성녀 [[잔 다르크]]와 함께 [[프랑스]]의 [[수호성인]]이다. 리지외의 테레사는 그녀의 영적 삶에 대한 접근의 간단함과 실용성 때문에 가톨릭 신자들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매우 영향력 있는 신앙 생활의 모범으로 인정받고 있다. 그녀는 [[아시시의 프란치스코]]와 함께, 가톨릭 교회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성인들 중 한 명이다. [[교황]] [[비오 10세]]는 그녀를 "현대 최고의 성인"이라고 불렀다.[* 하지만 비오 10세가 이 말을 할 당시, 소화 데레사는 아직 정식으로 시복/시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. 이는 그럼에도 가톨릭 교회에서 일찍부터 그녀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.] 비록 자신은 직업적인 신학자가 아니었고,[* 건강상의 이유로 만 13세에 수녀원 기숙학교를 그만둔 이후, 더이상의 공교육은 받지 못했다. 다만 학창 시절 [[월반]]을 할 정도로 학업은 우수한 편이었고, 독서량도 상당히 많이서 지성적으로 탁월했다. 테레사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성녀가 굉장히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다.] 만 24세라는 어린 나이에 요절했지만, 특유의 실용적이면서도 깊이있는 영성은 신학자들과 일반 대중들에게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, 가톨릭 교회의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. 간단히 비유하자면, 가톨릭 신학계의 [[잔 다르크]]라고 할 수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